우리 선수들의 시범은 종반을 향해 갈수록 그 수준과 난이도가 높아갔다.

정명호 5단과 박진수 주장은 내달리다가 한번 몸을 솟구치면서 돌려차기와 가위차기로 5개 방향의 송판을 번개처럼 격파, 어지간한 사람은 어떤 동작이 펼쳐졌는지 금방 알아차리지도 못할 만큼 전광석화 같은 기술을 과시했다.

바로 이어서 주재곤 5단의 날렵한 몸이 마치 풍차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모두 9차례의 연속 뒤후리기로 숨가쁘게 송판을 가른 다음 방향 바꿔 돌개차기 격파를 성공시켰다.

기술과 파워를 동시에 구사하는 서의성 5단의 3단계 격파에 이어 국내에서 가장 몸이 가벼운 테크니션 이용주 5단이 앞으로 전진하면서 9회 돌개차기와 5백40도 뒤후리기 격파.

마지막으로 김재승 5단이 자신을 둘러싸고 어지럽게 움직이는 수십개의 표적들을 엄청난 스피드와 지구력을 뽐내며 정확하게 차서 깨뜨려 매트 위에 부서진 송판 조각들을 수북이 쌓았다.

하나하나 프로그램이 진행될 때마다 관중들은 숨을 죽이고 있다가 경쾌한 파열음과 함께 부서지는 송판이 허공에 포물선을 그리면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주었다.

처음에는 그저 넋을 놓고 바라보며 박수나 치던 본부석의 귀빈들도 중반 이후 그 팽팽한 분위기에 동화되어 매번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열광했고 우리 이규형(李揆亨) 대사의 손을 잡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20개 이상의 수준높은 프로그램들이 실수없이 깔끔하게 펼쳐져 ‘이만 하면 성공이다’ 싶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남승현(南昇鉉) 감독은 시범의 마지막 끝자락에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비장의 카드를 숨겨두고 있었다.

남승현 감독이 시범의 대미를 장식하며 ‘장애물딛고 공중몸돌아 앞차기’로 농구골대 백보드 상단 높이에 해당하는 목표물을 격파하기 직전의 대형. 그는 목표물 아래 두겹으로 쌓여있는 책상을 밟고 몸을 솟구쳐 공중에 뛰어 오르면서 회전격파를 성공시켰다. 격파장면도 선수들이 카메라에 담았으나 너무 속도가 빨라 회전하는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이 대형만을 소개한다.

조금 전까지 양복을 입고 선수들을 지휘하던 남 감독이 어느 사이엔지 도복차림으로 무대에 등장했다. 때를 같이 하여 장내 아나운서가 “이번에는 선수들을 가르치는 지도자가 직접 나와 특별시범을 보이겠다”고 소개했다.

순간 장내는 아연 긴장했다. ‘지도자라니까 선수들보다 더 수준높은 기량을 보여줘야 할 텐데 무슨 내용일까. 나이 많은 감독이 과연 잘 해낼까’ 하는 기대와 우려가 모든 관중들의 가슴 속에 물결치는 듯했다. 모두 숨을 죽이고 남 감독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온몸에 힘을 모은 다음 그는 무게있게 품새를 선보였다. ‘천권-.’ 바로 이어서 양쪽에서 선수들이 붙잡고 있는 두께 2cm짜리 송판 4장씩을 손으로 격파, 위력을 과시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본부석 맞은편에 이상한 대형이 형성되었다. 책상 위에 두 개의 의자를 놓고 그 위에 두 사람이 올라선 다음 두 사람의 어깨를 밟고 이용주 5단이 올라서 송판을 들어올렸다. 농구골대의 백보드 상단에 해당하는 엄청난 높이였다.

저걸 어쩌자는 것인가. 송판 아래 두 겹으로 놓인 책상을 밟고 뛰어올라 발로 격파하려는 의도 같았다. 기합을 넣으며 달려간 남 감독은 책상을 밟고 뛰어오르는 동작에 실패. 두 번째 시도에서도 실패. ‘아, 역시 마음대로 안 되는구나!’ 모두가 안타까워했다.

세 번째의 시도. 정신을 집중하고 힘을 모으는 그의 기합에 쇳소리가 섞여 나오는 듯싶었다. 혼신의 힘을 다하는 증거였다.

드디어 점프, 남 감독의 몸이 허공으로 높이 치솟으며 회전하는가 싶더니 그의 발에 걸린 송판이 산산조각이 났고 남 감독은 사뿐히 내려섰다.

순간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오며 모든 사람들이 벌떡 일어섰고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한결같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올 45세. 대학생 아들을 둔 중년의 남승현 감독. 금년 말이면 8단에 오르는 노장이 아직도 그런 기량을 지니고 있다니! 그가 보여준 격파의 공식 명칭은 ‘장애물 딛고 공중 몸돌아 앞차기’.

행사를 끝낸 우리는 근처 식당에 마련된 이규형 대사 주최 만찬장으로 가야 했다. 그 자리는 노보시비르스크 부지사와 국립공과대학 총장, 고려인연합회 회장 등 귀빈들과 유럽 여러 나라의 외교관들, 그리고 우리 선수단을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 시간이나 늦게 갈 수밖에 없었다. 관중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부서진 송판과 노트, 셔츠 등에 끊임없이 사인을 요구했고 함께 사진찍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날 정열적인 이규형 대사는 완전히 흥분했다. “정말 잘 했다. 대사관의 업무수행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고맙다”며 거듭거듭 감사의 뜻을 전했다.

박광수 문화원장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러시아 사람들은 무뚝뚝한 성격이라 그런지 기립박수는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은 전원이 일어서서 열광했다. 이렇게 잘 할 줄은 나도 몰랐다”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국립공과대학 총장은 필자의 손을 잡고는 “세계를 놀라게 할 아이템과 콘텐츠다. 매우 훌륭하고 인상적이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창신 상임고문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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