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태권도 한마당 2008대회는 지난 7월 16일부터 20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의 컨벤션센터 안에 있는 실내 체육관에서 펼쳐졌다. 공식적인 위치는 이렇게 돼 있으나 쉽게 설명하면 LA 중심부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는 애너하임이라는 곳, 디즈니랜드로 널리 알려져 있는 바로 그 유명한 동네에서 열렸다고 해야 알아듣기 쉬울 것 같다.

최창신 상임고문.

그곳에 머물던 대회기간 동안 경기장 주변에서 한 두 사람으로부터 ‘대회가 별로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평을 들었는데 귀국해보니 서울에서도 비슷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열 마디 말 중에서 아홉 마디가 맞아도 대단하다고 칭찬하지 않으면서 한 마디만이라도 어긋나면 곧 허물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모여든다. 열 가지 계략 중에서 아홉 가지가 성공하여도 반드시 그 공(功)을 돌리려 하지 않으면서 한 계략만 이루지 못하면 비방하는 소리가 사면에서 일어난다.’ 채근담(菜根譚)에 나오는 말이다.

대회가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다고 평가하는 이들의 말이 전적으로 틀린 건 아니다. 상황을 미분(微分)해서 바라보면 군데군데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눈에 띌 것이다. 필자의 눈에도 그런 면은 가끔 보였다. 그러나 매사 사물을 보는 시각(視角)은 그 기준과 가치관이 합당한 것이어야 한다. 물론 설거지도 잘 하고 그릇도 전혀 깨지 않으면 가장 잘 되고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설거지해야 할 그릇들은 많고 인력과 시간이 부족하면 그릇을 깰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아무 일도 안 하고 팔짱끼고 앉아 있다가 몸살이 날 정도로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그릇 몇 개 깨뜨렸다고 큰 소리로 꾸짖고 소란을 피우는 못된 시누이 같은 사람들을 옳다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태권도 한마당이 명실공히 세계적인 행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종주국’이라는 부모의 그늘을 떠나 애로사항이 많고 힘이 들어도 해외로 무대를 옮겨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럼에도 해외에서 선뜻 유치하겠다고 나서는 단체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지난해에 미국 태권도연맹(USTF)이 상당한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히 대회를 유치, 무난히 치러냈다. 그러자 여태까지 팔짱만 끼고 있던 시누이들이 조금 지적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여러 말 하는 건 옳지 못하다. 이번 대회 최고의 가치는 17살짜리 ‘한마당’이 처음으로 해외를 향해 길을 떠나게 되었다는 점이다. 어떤 실수나 부족함이 이 가장 큰 가치와 의미를 능가하겠는가?

AD 50년경 사도 바울과 두 명의 동역자들이 터키의 서쪽 항구 드로아를 떠나 그리스의 네압볼리항에 도착, 빌립보라는 마을에 자그마한 가정 교회를 세웠을 때만 해도 아무도 이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평가한다. 그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던 일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었다고. 이를 계기로 유럽의 문이 열려 기독교가 전파되고 결국 세계사가 바뀌게 된 것이다.

‘태권도 한마당’도 처음으로 서울을 떠나 북미의 LA항에 도착, 첫 나들이는 그리 뻑적지근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그것이 태권도 역사에 큰 전기(터닝 포인트)를 기록될지 누가 알겠는가.

일부 태권도인들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나마 대회를 치를 수 있었건 건 이상철 조직위원장과 그의 동역자들 서너명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회 준비상황이 만족스럽게 돌아가지 않자 이들은 대회 개막을 한달 반 가량 앞두고 아예 보따리를 싸가지고 각자 집을 떠나 LA에 가서 장기 체류하면서 직접 일을 챙겨야 했다. 이렇게 애를 썼건만 막상 대회가 시작되고 보니 이것저것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종기(腫氣)처럼 부풀어 올라 남모르게 관계자들을 괴롭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들은 밤늦게까지 혹은 아침 일찍 비상 대책회의를 열기도 했다.

너무 신경을 많이 썼기 때문에 위장병을 얻어 대회가 끝난 지 보름이 지났어도 속쓰림 현상이 멎지 않아 약을 먹고 있는 임원이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이들에게 비난의 화살보다는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자. 그게 무도인의 바른 자세일 듯싶다.

대회가 끝나던 날 필자는 처음으로 이상철 위원장과 단 둘이 밤늦게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위원장이 말하고 필자는 거의 들었다. 아니 들어주었다.

LA서 열린 세계태권도한마당 개막식

그 동안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던 여러 가지 일들, 남에게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사정들을 누군가에게는 한번쯤 털어놓고 싶은 듯했다. 그래야만 마치 가슴에 종양처럼 뭉쳐있던 한(恨 )의 응어리들이 조금은 풀어져 없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보여 들어준 것이다.

듣기 민망한 이야기들도 있었다. 남에게 전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태권도,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왜, 어떻게 지켜나가야 하는 것인가.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이국의 밤은 소리 없이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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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창 신

1960년대 선수생활을 했던 정통 태권도인.

체육부(현 문화관광체육부) 대변인을 거쳐 체육과학국장·체육지도국장으로 서울올림픽 대비 종합전략을 기획, 한국의 4위 달성에 기여했으며 축구협회 수석부회장, 문화체육부 차관보, 2002월드컵조직위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본사 상임고문, 국기원 상임이사.

최창신 고문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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