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70년대의 독일(당시 서독)은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불리울만큼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룩함으로써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독일은 제 2차 세계대전(1939~45년)의 패망으로 사상자를 많이 낸 만큼 출생률이 극도로 저하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1960년대를 전후하여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결과가 초래되었다. 때문에 동유럽에서부터 우리 한국에서까지 노동력을 들여왔던 것이다. 이는 한독 정부가 당시 체결한 ‘독일 광산의 한국 광산 근로자 임시고용협정’에 의거한 것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나는 독일에 올 수 있는 기회를 잡았고 공기가 맑고 자연이 아름다운 선진국에 오기는 했지만 광산이라는 어려운 환경에서 내 자신이 광부가 되어 어떻게 작업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막막한 심정으로 새 일터를 찾았다.

약 6주간의 기초교육과 언어교육을 받고는 작업복을 받았다. 흰색 작업바지, 흰색 줄무늬의 청색 남방, 작업구두와 노란 헬멧, 그리고 헬멧 가운데에 자리한 램프, 광산에서 나누어 주는 대로 받아 입고 신고를 한 후 거울을 보니 내 모습은 영락없는 광부가 되어 있었다. 작업 번호 2826. 이것이 광산에서의 내 번호였다. 작업 시작과 종결 시간에 찍는 작업 시간 체크카드, 월급 카드를 나눠 받았는데 이 카드에 찍힌 번호는 심지어 의사에게 찾아가도 다 통하는 일종의 신분증인 셈이었다. 마치 군인에게 군번이 있듯이 우리들 광부에게는 작업 번호가 있었다.

첫날 난생 처음으로 석탄을 파낸다는 광산 지하에 들어갔다. 독일의 광산은 우리나라처럼 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 가운데에 위치해 있는데 무엇보다 차로 가득 찬 주차장을 보면서 이곳이 광산인지 회사인지 대체 분간을 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광부들조차 자가용을 한 대씩 소유하고 있어 선진국이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초보인 4명의 한국 광부와 독일 작업조장 1인으로 구성된 작업팀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땅속 깊이 직선으로 내려갔다. 몹시 빠른 속력으로 하강하는 것 같아 귓속이 멍하였다.

한참 후에 도착한 곳은 1000m깊이의 지하, 지하였지만 천정도 높고 공기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데다 주위가 밝아서 땅속에 들어왔다는 생각보다는 낯선 환경에 신기한 느낌마저 들었다. 마치 파리의 좁은 지하철 선로를 연상시키게 하였는데 이곳에서 각자 전동인차를 갈아타고 또 한 시간쯤 가는 것이 아닌가. 시속 30km로 달리는 전동인차였으니 족히 생각해도 엘리베이터로부터 30km는 더 달려온 셈이다. 사방으로 수십 킬로미터씩 길이 나 있었고 도시의 지하철 네트워크처럼 각 방향을 구축해 석탄을 발굴하고 발굴한 자리는 다시 메우기도 하면서 또 다른 방향의 행로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인차에서 내려 다시 걸어 들어간 곳에는 공기가 희박하여 숨도 제대로 쉬어 지지 않았다. 땀이 축축하게 속옷을 적시기 시작하였다. 사방이 어둡고 천정이 몹시 낮아 바로 서고 싶어도 서지 못하는 굴속을 몸을 구부려 수백 미터 더 들어간 곳은 석탄을 다 캐고 난 이미 폐허가 된 막장. 우리조가 하는 일은 설치된 둥근 레일을 굴속에서 철거하는 임무였는데 이미 폐광을 시킨 곳에 가치 있는 쇳덩어리들을 모두 수거하는 일이었다.

하스페트(Hasfeld)라는 전기 모터에 체인을 걸어서 끌어당기는 이 작업은 대부분 기계를 움직여서 하는 일이었기에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았지만 체인을 끌어당길 때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돌과 먼지는 마스크를 써도 코로 들어오는 것을 느낄 정도였다. 또 광산에서 침을 뱉는 습관이 붙었는데 자주 침을 뱉으면 조금이라도 먼지를 덜 마시게 될까 싶어서였다. 평소에 하지 않던 나쁜 습관이 몸에 베이는 것 같아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돌가루가 폐에 들어가면 일찍 죽는다는 선배 광부의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약 5시간의 작업이 끝나면 깊이 들어간 만큼 돌아서 나오는 시간도 그대로 소요되었다.

그러나 작업이 끝나면 마음만은 훨씬 가벼웠다. 고된 일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그리고 오후는 자유시간이니 생각만 해도 즐거웠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지상으로 올라오면 비로소 살 것 같았다. 마음껏 들이쉴 수 있는 공기, 파란 초원과 숲, 그리고 드넓은 하늘을 바라보니 이 자연이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재차 실감할  수 있었다.

근심 걱정으로 시작한 광산일이 차츰 몸에 적응되면서 한 달이 된 후 나는 첫 월급을 손에 쥐었다. 연금보험, 의료보험, 세금, 그리고 기숙사비까지 하여 월급에서 반이 제외되고 600마르크. 당시 원화로 계산하면 81만원 정도였다. 난생 처음 내손으로 직접 번 귀중한 돈이었다. 나는 이 모두를 어머님께 송금하기로 했다.

곽금식 사범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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