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7월 25일, 만으로 50세가 되던 해다. 해마다 간소하게 생일을 기념하곤 했지만 이번에는 큰 홀을 빌려 그간 신세진 지인들, 체육관 직원들과 여러 사범님들을 한자리에 모시고 생일잔치를 열었다.

곽금식 사범.

초대된 사람들은 모두 250명. 집사람은 며칠 전부터 음식준비 때문에 몹시 분주하였다. 그로쓰만 씨 내외분은 돌아가신 후여서 그분들의 딸과 사위들, 왈써 씨 내외분, 칼스루헤 사민당의원, 대법원판사, 에더 씨 부부 등 모두 매콤하고 얼큰한 한국음식에 얼굴이 발개졌으나 맛있다며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큰아들 경진이는 교포 2세로 구성된 태권도시범단 ‘태풍’팀을 초청해 다이내믹한 시범을 선보였고 춤을 잘 추는 둘째 경수는 그가 속해 있는 ‘블랙댄스’팀과 함께 멋진 공연을 보여주어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이어 체육관의 독일 유단자들이 한국어로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축하 노래가 끝나자 나는 여러 사람들에게 떠밀려 앞으로 나갔다. 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국 가요인 ‘가는 세월’을 불렀고 앵콜까지 받은 나는 집사람과 나란히 서서 ‘만남’이라는 노래로 화답하였다. 지난 26년의 독일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1998년 7월, 만 스무 살이 된 큰 아들 경진이가 체육관련 학과의 학업을 마치고 군대에 입대하였다. 독일 국민의 의무 중 하나인 10개월 간의 병역기간은 한국의 상황과는 달라서 크게 걱정할 부분이 없었으나 큰 아들이 맡고 있던 초등부반의 태권도 사범자리가 공석이 되었다. 이때 이미 3단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 둘째 아들 경수가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무런 문제없이 사범으로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몇 달 후 둘째에게도 영장이 나왔다. 그러나 경수는 군복무 대신 사회봉사활동을 통해 국방의 의무를 대체하는 방법을 택하겠다고 하면서 계속 체육관 일을 돌보았다. 아버지로서 집을 떠나 군 생활을 통해 보다 폭넓은 사회경험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바램도 있었으나 이미 성인이 된 아들의 결정을 존중하였다. 병무청과 몇 회의 서류 절차를 마친 경수는 집에서 출퇴근하며 체육관 일에 매진하였다.

하루는 큰 아들 경진이가 외박을 나왔다. 얼룩무늬가 그려진 군복에 모자를 쓴 모습을 보니 이곳이 역시 다른 사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과 몸은 분명 나를 닮은 한국인인데 우리 육군이 입는 군복이 아닌 독일 군복을 입은 것이 마치 영화에 나오는 인물처럼 보였다. 이 사회에 적응하며 더불어 살아온 시간이 오래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국인임을 새삼 깨달았다.
 
1999년 2월, 칼스루헤가 속한 바덴뷔켐베르크주 태권도협회 부회장으로 취임했다. 독일 태권도협회 창립 때부터 꾸준히 협회의 심사위원, 교육위원으로 일을 해왔지만 협회에서는 나를 태권도 보급에 기여할 수 있는 인물로 평가하고 부회장으로 당선시켰다. 나는 이 뜻을 받아들여 앞으로 4년의 임기동안 최선을 다해 태권도 보급과 육성을 위해 노력할 것을 결심하였다.

곽금식 사범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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