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 11일, 오늘로 독일에 온 지 꼭 35년이 된다. 해마다 이맘때면 처음 독일에 도착해서 생활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태권도 사범이라고 선배 사범님들과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며 무수히 많은 송판과 벽돌을 깨기도 했다. 실내체육관을 가득 메운 관중들 앞에서 조명을 받으며 울려 퍼지는 애국가를 따라 부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곤 하던 때의 그 감격. 스물세 살의 청춘에 해외 태권도 사범이 되겠다는 꿈을 간직하고 떠나 온 고국. 그 꿈을 이루어 나가려고 했었기에 어떠한 시련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동안 나의 부모와도 같은 그로쓰만 씨 내외는 세상을 떠났고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알게 되면서 독일이라는 사회를 이해하고 이 사회에 적응하며 태권도를 보급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 최선을 다했기에 오늘의 내가 존재하는 것 같다.

사범으로서 성공적인 지도자의 길을 가는 데에는 몇 가지 지켜야할 숙제가 있다. 우선 관원들에게 분명하게 과제를 전달해야 하며 쾌적한 환경과 분위기를 관내에 만들어 주고 질서를 유지하며 통제해야 한다. 또 수련과정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를 하도록 충분히 설명해야 하고 과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도방법을 수정해 나가는 것, 또 이들의 모범이 되도록 늘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태권도를 통해 인격수양과 도덕, 지혜를 배워 나갈 수 있는 자세, 덕을 갖춘 인간으로 발전하도록 이끌어 나가 개개인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도장 전면에 ‘홍익인간’이란 문구를 붙여 놓았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대부분 젊은 청년들은 외적인 수련에 관심이 크고 중장년층은 내적인 수련을 중요시하며 동양무도에 관심이 많다. 이렇게 다층적인 수련생들을 한데 어우르며 모든 수련생들이 효과적으로 운동해 나가고 배울 수 있도록 지도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자세가 뒷받침되어야 함을 실감한다.

독일에서 3년만 지내다가 돌아오겠노라 약속했던 아들은 10년이 지나도 돌아가지 않았다. 어머님은 아들과 손자를 그리워만 하시다가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보러 직접 오시기도 했다. 체육관과 집을 둘러보시고는 ‘이제 다시 한국에 돌아가면 걱정하지 않을 테고 또 다시 돌아오라고 하진 않을 테니 독일에서 열심히 생활하거라’ 하시면서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우리 가족의 사진을 늘 머리맡에 두고 만지셨다고 한다.

이렇게 고향을 떠나온 나는 꿈을 간직한 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점점 성장해 나갔다. 해를 거듭하면서 태권도 지도와 체육관 운영에 자신감이 늘어났고 태권도장에서 종합체육관으로 발전하면서 행복했던 순간들을 기억한다. 그러나 방심하지 않고 늘 태권도에 전념하였고 온가족이 체육관 일에 최선을 다했다.

이제는 우리 네 식구를 포함하여 16명의 사범과 직원이 칼스루헤와 포르츠하임을 오가며 약 2,000명의 관원들을 지도하고 있다. 두 아들 모두 체육관에 열심이다. 경구 역시 독일아가씨를 사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집사람은 ‘이제 며느리에게 김치 얻어먹기는 틀렸다’며 체념하는 듯한 말을 했지만 두 아들 모두 짝을 찾아 열심히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뿌듯해 하는 눈치다.

지극한 정성과 사랑으로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며 체육관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면서 불평 한마디 없이 지금까지 적극적으로 살아온 집사람에게 언제부턴가 흰 머리카락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늘어나는 흰 머리카락을 뽑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예 검은색으로 염색을 하고 있다. 그간의 노고로 여유가 생긴 지금은 시간을 내어 휴양도 하고 여행도 가면 좋으련만 짜인 하루 일과는 변함이 없다. 나도 내년이면 환갑이 되는 나이지만 여전히 마음은 젊고 할 일도 꿈도 많다. 건강을 위해서도 앞으로 태권도와 같이한 독일에서의 생활에 다른 변화를 주는 것이 쉽지 않다. 지난 35년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 오늘도 나는 가방을 들고 어김없이 체육관으로 향하고 있다.<끝>

곽금식 사범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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