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 한국체대 선수단이 도장을 방문해 친선 경기를 가진 후 기념촬영.

미국생활의 급물살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내려온 지 3개월, 나의 새로운 적응 훈련이 시작되었다. 함께 내려온 셋째 형이 먼저 도장 문을 열었다. 그보다 1년 전에 도장을 개관한 형은 넷째 형이다. 넷째 형은 영어에 능숙하다. 이곳에서 유학생활을 했기에 그 누구보다도 영어에 능숙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실력이 뛰어나서인지 도장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을 하였다. 셋째 형도 성실성이 영어라는 언어의 부족함을 메우고도 남아 하루가 다르게 성장을 거듭했다. 두 도장은 1년도 되지 않아 2~3백 명의 수련생을 가진 도장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첫 1년 동안 교수법에 대한 기본을 배운 단계였다면 그 다음 1년은 거의 실전을 경험하게 되었다. 새로운 곳에서의 나의 생활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였고,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배우며 한 발 한 발 미국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88년 올림픽과 도장 개관

한국에서 올림픽 분위기가 한창일 때, 나는 형님들의 도장에서 두 시간 운전 거리의 아주 작은 소도시로 옮겨 오게 되었다. 그린빌(Greenville)이라는 작은 도시, 인구 4만 명이 안 되는데 대학생 인구가 17,000명이나 되는 대학촌이었다.

이제는 독립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미국에 온 지 2년이 안 되어 나는 이 작은 도시 그린빌, 말 그대로 녹색마을로 이사 와서 형님의 도움을 받아 도장을 개관하였다. 주머니에는 돈이 없었다. 아는 사람도 없었다. 참으로 막막했다. 어떻게 도장을 운영해야 할지.

하지만 나는 다시 한 번 “나로 하여금 돌멩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꼭 쓰이는 바 되는 모퉁이 돌이 되게 하소서” 기도하면서 이곳의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도장이 공사 중일 때에는 차 안에서 새우잠을 청하고, 씻을 곳이 없어 아침에 가까운 헬스클럽에 가서 사정 이야기를 하였다. 그랬더니 회원증(Membership) 판매를 담당한 아가씨가 나에게 1개월 무료 이용권을 허락하였다. 아침이면 그곳에서 볼일도 보고, 샤워도 하며 한 달을 보냈다. 그렇게 해서 공사가 끝이 나고 도장에 들어 갈 수 있었다.

내 도장에서 맞은 첫 번째 학생은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던 친구로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 도장에 불러들여 나의 첫 번째 학생이 되었다. 그 때의 그 기분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젊은 학생들이 하나둘씩 늘어가면서 도장이 어느 정도 운영되어 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매달 납부금을 내기에도 부족하였다. 전기세, 전화세, 월세는 너무나 큰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주머니의 돈은 바닥이 나고 없었다.

나를 아들처럼 아껴주시던 돈 안케니(Don Ankenny)라는 분이 계셨다. 한국전에 참전하여 다리 부상으로 상이군인이 되셨던 그가 나를 아들처럼 아껴주셨다. 끼니를 거르지 말라고 처음 몇 달 동안 편지와 더불어 100달러씩 보내주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돈으로 광고지를 만들어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도장 홍보를 하였으며, 나의 생활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어떤 때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야 할 형편이었다. 형제들의 도움을 청해도 되었겠지만, 내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88서울 올림픽은 나에게 너무나 고맙고 잊지 못할 기억나는 대회였다. 그 덕분에 내가 며칠 동안 끼니를 때울 수도 있었다. 믿기지 않을지 모르지만, 당시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샀을 때 겉봉지에 조그마한 행운권이 있었다. 이 행운권은 미국팀이 어떤 종목에서든 금메달을 따면 햄버거를 공짜로 주고, 은메달을 따면 감자를, 그리고 동메달을 따면 음료수를 주었는데, 나는 첫 번째 햄버거 값을 지불하고는 거의 10일간 공짜 햄버거를 먹을 수 있었다. 그 햄버거들의 행운권에 금메달 종목이 나의 손에 걸렸고 덕분에 한 끼니는 햄버거로 때우는 행운을 안았던 것이다.

이병석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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