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러 관계발전 계기 되었으면

노보시비르스크에서의 마지막 시범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였다. 무대 바닥에 이상한 조짐이 보였다 아무래도 우리의 과격한 점프 동작 때문에 무대 한 쪽이 내려앉고 있는 듯했다. 나는 혹시라도 무대 한 쪽이 내려앉아 부상자가 나올까봐 조마조마했다. 특히 단원들이 무대가 내려앉은 곳에서 점프하고 착지하면서 약간씩 중심을 잃는 것이 눈에 보이면서부터는 그 불안이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다행히도 무대는 우리가 시범이 끝날 때까지 잘 견뎌 주었다.

그렇게 아슬아슬했던 야외무대 시범이 끝났고 광장 안의 러시아 사람들은 밝고 호의적인 모습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는 우리가 그동안 느낀 무뚜뚝한 러시아인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시범이 끝나고 우리 교민들이 한국인의 위상이 높아진 것 같다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렇다 광장 안의 사람들은 더 이상 우리가 지난 몇 일 간 느낀 무뚝뚝한 러시아인들이 아니었다. 밝고 호의적으로 손을 흔들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 그들은 우리를 보면서 손을 흔들고 있지만 그것은 곧 한국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러시아에서 한국인은, 그리고 동양인은 그리 좋은 대접을 받는 인종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지난날의 잘못된 편견에 대항하고 있었다. 시범이 끝나고 고려인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께서 오셔서 어눌한 우리말로 사인을 요청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이 지난날 그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는지 잘 말해주고 있었다. 러시아 정부뿐 아니라 한국 정부에서도 버림받아야 했던 그들의 삶을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러시아만큼 한국이 미웠을 텐데 그래도 모국에서 온 손님들이라고 이렇게  찾아주시고 사인까지 받으러 오시니 내가 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 지금은 정부에서도 고려인들을 위해서 많은 보상정책을 펼치고 있다. 가까운 예로 내가 살고 있는 김포 지역만 해도 정부에서 고려인들을 위한 거주지를 만들어 주고 있는 실정이다.

오늘 우리는 한국과 러시아 수교 20주년을 맞이해서 한국인들이 소외받아야 했던 이 땅에서 한국을 알리고 더 나아가서 소외받은 그들을 위로하는 아주 의미 있는 시범을 했다. 러시아도 한국도 상처로 얼룩진 과거는 책 속에 덮어 버리고 새로운 출발을 했으면 좋겠다.

공식 행사의 일정이 끝나간다. 오늘은 태권도 국가대표시범단과 퓨전국악팀 미지의 마지막 공식행사가 있는 날이다. 시범단의 행사는 어제 끝났지만 같은 배를 타고 있는 미지의 공연은 오늘이 끝이다. 특별히 이번 공연에는 러시아 주재 한국 대사님이 어제 부임해서 가지는 첫 공식활동으로 한국문화 행사에 참석하는 날이기도 하다.

미지팀의 공연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레닌광장 내 오페라하우스에서 하게 된다. 오페라하우스의 외관 못지않게 내부 또한 멋진 분위기를 자아냈다. 입구에 있는 X-ray 검사실부터 외투를 맡아주는 보관함까지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그런 광경이었다.

간단한 대사님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공연이 시작되었고 역시나 오페라 전용극장답게 미지팀의 연주를 더욱 빛나게 했다. 또한 이제는 조금 친해진 우리 시범단 쪽 분위기도 예사롭지 않았다. 특히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는 미지팀의 연주에 우리 쪽의 응원 분위기는 거의 열광적이었다. 연주와 응원 호흡이 어찌나 잘 맞든지 마치 두 팀이 합동공연을 하는 듯했다. 미지팀 단원들도 우리의 열광적인 응원이 고마웠는지 중간 중간 휴식시간에 손을 흔들어주며 응원하는 우리에게 감사를 나타냈다.

연주가 다 끝나고 나서도 관중들의 앙콜이 이어졌고 마지막을 한국의 대표 노래라고 할 수 있는 아리랑으로 마무리를 했다. 러시아 노보시비리스크 레닌광장 오페라 하우스에서 울려 퍼진 아리랑은 내가 한국인이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해주었다.

이로써 태권도 국가대표시범단과 퓨전국악팀 미지의 한국-러시아 수교 20주년 기념 문화행사는 막을 내렸다. 우리 시범단과 미지팀이 처음에는 서먹했지만 이제는 많이 친해진 것처럼 한국과 러시아도 지난 20년간의 수교를 발판 삼아 앞으로 더욱 가까워졌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주의가 붕괴되었지만 아직도 사회주의 냄새가 남아있는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열린 문화행사는 다른 지역에서보다 값진 공연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한국과 러시아가 인종과 문화적 다름을 인정하고 세계화시대에 맞춰 상호 이해와 협력의 관계로 더욱 발전해 나갔으면 한다. 오늘 국가대표시범단과 퓨전국악팀 미지팀이 친해졌듯이 한국과 러시아가 한 걸음 더 가까워졌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강동권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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