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윤순철 감독

2001년 처음 이탈리아 대표팀을 맡은 윤 감독은 2004년 시드니 올림픽 첫 출전에 이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처음 남자 -80kg급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더니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마침내 기다리던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것도 태권도 경기의 꽃이라 할 남자 무제한급(+80kg급)에서의 우승이었다. -80kg급에서도 동메달을 추가했다. 남자 선수 두 명을 출전시켜 100% 메달 획득의 쾌거를 거둔 것이다.

*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강호들을 물리치고 남자 +80kg급에서 우승한 비결은 무엇일까.

“금메달을 획득한 카를로 몰페타는 내 애제자다. 카를로는 2000년 주니어 대표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탈리아 대표팀 내에서도 대표급 선수였다. 나는 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런던 올림픽을 준비하며 나는 그의 장단점은 물론 심리상태까지 파악해 상대선수에 대비토록 했다. 감독이 선수와 궁합을 맞췄다고나 할까.”

카를로는 윤 감독을 만나 각종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윤 감독의 권유로 2009년부터는 체급을 라이트급에서 미들급으로 올려 뛰기 시작했다. 단순히 남자 중량급 선수가 많은 이탈리아에서 살아남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카를로의 근력과 체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를로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2011년 경주 세계대회에서 한국가스공사의 차동민에게 져 동메달에 그쳤지만 올림픽에서의 충분한 가능성을 보았고 메달 획득을 자신할 수 있었다.

윤 감독은 선수들의 특징을 선수 자신보다 더 잘 파악하고 있지만 그들이 상대할 선수들을 분석, 파악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는다. 세계랭킹을 참고로 상대할 선수들을 면밀히 살펴본 후 관련 자료를 수집한다. 자료 수집이 끝나면 분석에 들어간다. 장단점은 물론 1년 전 동영상을 구해서 비교 분석하고 예전의 스타일까지 꼼꼼히 챙겨본다.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 윤 감독은 경계대상 1호인 차동민을 피하기 위해 시드 배정에 많은 신경을 썼다. 국제대회도 가려서 출전해, 결국 카를로는 시드 3번을 받았다. 체급의 특성상 큰 선수들에 대비하기 위한 훈련도 많이 시켰다. 대진표가 나오면 그때부터 또 다시 분석 작업에 들어간다. 그 동안 모은 자료를 토대로 선수와 대화를 나누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키는 것이다. 대회에서도 경기가 끝나면 유튜브를 통해 다음 선수의 경기 동영상을 확보하고 선수와 또 다시 이를 분석하고 대비한다.

세컨드로서의 역할 발휘는 기본이다. 즉각적인 대응을 위해 경고와 감점사항을 정확히 캐치해야 한다. 물론 영상판독 카드도 적절히 쓸 수 있어야 한다. 영상판독은 타이밍과 의사전달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윤 감독은 이번 올림픽에서 이런 것들이 잘 맞아 떨어진 것 같고 운도 많이 따랐다고 말한다.

 * 한국 성적 좋아야 해외 활동 사범도 산다.

한편 윤 감독은 한국 대표팀에 대해 많은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한국 팀의 좋은 성적과 결과가 있어야만 외국에 나가있는 한인 사범들의 권위와 위상이 선다는 것이었다.

“모국의 태권도가 형편없다는 소리가 들리면 우리가 어떻게 외국 선수들을 지도할 수 있겠어요? 외국팀에서 한인지도자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려면 한국 팀의 성적이 좋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선 한국 태권도에 정책의 일관성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1회성으로 끝나면 하나마나다. 이벤트성 기획적 시도는 더더욱 안 된다. 연속적이고 지속적으로 태권도를 발전시킬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선 경기장에서의 언어 문제부터 해소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영상판독 신청이나 대표자회의에서 영어는 필수다. 또 대표팀을 전담하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전임지도자는 물론 내과, 외과, 정신과 의사, 심리치료사와 마사지사, 체력 트레이너, 다이어트 담당관 같은 전문가들이 협력하는 국가대표 전담팀이 운영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윤 감독은 모국 태권도의 해외 전지훈련과 올림픽 선발전, 올림픽 본선 등을 지켜보면서 제일 안타까웠던 점이 조급함이었다고 말한다. “한국 팀은 정신적으로 너무 여유가 없는 것 같았다. 경기에서 진 선수에게 수고했다며 위로해주어야 하는데 한국 지도자들은 그런 것에 너무 인색한 모습이었다. 선수는 몸으로 말을 한다. 지도자는 선수의 몸을 보고 상태를 파악하고 이를 고려해서 상대 선수에 대처해야 한다.”는 게 윤 감독의 지론.

한국팀의 또 다른 문제는 전술에 변화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지도자와 선수들 간에 소통이 없으니 변화도 없을 수밖에 없다. 윤 감독은 “단기간에 바뀔 수는 없겠지만 ‘받아차기’ 일변도의 전술은 하루빨리 고쳐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 최근에는 체력도 급격히 떨어지는 것 같고 연타공격이 적은 것도 안타깝다고 말한다.

윤 감독은 마지막으로 국제 룰에 안이하게 대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지도자는 물론 선수들 역시 국제 룰에 무조건 적응해야 한다. 대회에서 채택된 전자호구에 충분히 대비해 이기는 경기를 위한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 국제경기에 많은 선수를 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좋은 선수를 여러 국제대회에 여러 번 출전시켜 국제경기 경험을 쌓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서울체고, 경희대, 상무에서 선수로 뛰면서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아선수권대회를 제패하고 각종 국제대회에서 두루 우승을 거두며 오랫동안 국가대표를 활약했던 윤순철 감독. 그 덕분에 지금 이탈리아는 올림픽 특수를 누리고 있다. 올림픽이 끝난 후 열린 지난 10월 태권도 지도자세미나에는 종전보다 참가인원이 3배 이상 급증해 태권도의 열기를 실감하고 있단다.

이탈리아 국내 세미나를 마치자마자 주니어대표팀을 데리고 이번 코리아오픈대회에 출전한 윤 감독은 바쁜 일정에도 피곤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이탈리아 주니어대표팀도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수확했다.

<심대석 기자>

심대석 기자  goodoo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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